오프닝: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망설임은 사치일 뿐
인생을 살면서 나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요? 🤔
물론 기회라는 것은 내 인생에 의미를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정적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1000억이 있고,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도 없고, 걱정이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해봅시다. 기회라는 것이 필요할까요? 7억 하는 롤스로이스가 1% 할인한다는 것이 이런 사람들에게 기회라고 생각이 될까요? 🤔
물론 경재적인 것에 대한 기회만 기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동네? 지역구에서 신임을 받고 유명인이라면 명예욕으로 출마를 생각할 수도 있고, 나의 경쟁 상대가 없는 시기라면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겁니다. 배우라면 유명 배우나 작가분의 대본을 받았을 때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기회라는 것은 간절함이 있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로또같은 게 아닐까요? 아무런 걱정과 생각이 없다면 기회라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다만 기회에 잡느냐 혹은 그냥 흘려 보내냐는 차이가 있습니다. 진짜 로또는 로또를 사야지 기회가 생기는 것과 같이??(이게 비유가 맞나 🥲)
다시 돌아와서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좀 풀어보려 합니다. 사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 아? 그 때 그게 기회였구나? 내가 기회를 잡은거였구나? 가 맞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간절함과 무엇이든지 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좋은 기회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아무런 생각없이 "제가 하겠습니다!"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성향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냥 조건 없이 "제가 하겠습니다." 합니다. 이 자세는 제 삶을 바꿔놨다고도 생각하는 자세 중에 하나입니다. '고민할 시간에 그냥 해보자'라는 자세는 남자라면 군대에서 배웠자나요? 전 군대 다녀오고 남은 거라고는 마음가짐 하나라도 남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짬이 좀 찾을 땐 남들 잘 때 산업기사 공부하고, 그랬더라는... 추억이 있긴 합니다. 😉
교원에서는 어떤 기회가 있었고, 결론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전 글도 참고해주세요.
[난관] QA, 테스트 엔지니어의 연봉 정보 공개!!(ft. 9년의 시작)
오프닝: 관리의 결과 = 성과어느덧 10년 차에 왔습니다. 경력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그런 시기인 것 같습니다. 🥲 이 말은 10여 년 동안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그래도 어디 가서 QA라고
qa-testing.tistory.com
나에게 왔던 '기회'라는 녀석은 노다지였다.
교원에 입사한 직후. 그러니까 1월에 입사해서 4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에서는 ISO/IEC 20000 ITSM(IT Sevice Management) 인증을 받으려고 TFT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당시 TFT에 활동할 사람을 뽑고 있었는데 팀에서는 지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이전 글을 읽어보셨으면 예상하셨게지만...) "제가 해보겠습니다."하고 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팀 내의 진급(저를 제치고 진급한 그 분) 대상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했으면 한다는 팀장이 반강제적인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분도 진급에 대한 생각이 없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TFT를 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TFT 정원이 10명이었으나 QA라는 포지션도 필요할 것 같다는 TFT 팀장의 판단하에 정원을 11명으로 해서 저도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시 손을 들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ITSM은 프로젝트 관리를 위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저는 정보시스템감리를 대학원에서 배웠기 때문에 연관도 있고 재미있게 TFT 활동을 했습니다. 차라리 많이 활동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라고 할까요? QA 영역은 '서비스 수준 관리(SLA)' 정도가 다라서 크게 활동할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bsi라는 기관에서 교육도 받고, 시험도 봐서 자격증(ITSM 선임 심사원)도 취득할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향후 내부 심사와 사후 심사 대응해 TFT를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기업은 대부분 그럴 텐데 승진 포인트를 채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국 기관 발급이라 매년 갱신(169유로)을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자격증이지만, 그래도 뭔가 뿌듯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어서 매우 좋은 기회를 잡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2년 차에는 순조롭게 승진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사이에 품질률을 전사 프로젝트의 KPI로 정립하게 되었고, QA 파트로 분리되어 파트장도 되었습니다. 파트원은 5명이 되었고, 필요시 아르바이트를 채용해서 많게는 7명까지 파트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나게 된 프로젝트가 '아이캔두'라는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이캔두 프로젝트는 교원에서 사활을 걸었다고 해야 할 만큼 큰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기억하기로는 개발비 약 80억, 사업비 400억 정도의 프로젝트로 얼핏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QA의 투입은 없었습니다. 개발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외주 개발사의 상태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순간 내부 QA를 해서 품질률을 측정해 보자는 니즈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품질 계획을 수립하고, 기획서 분석을 통해 테스트케이스를 작성하였습니다. 2개월 동안 5명이 2,500여 건의 테스트케이스를 작성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획서는 50~100장 사이의 PPT 파일이 3~40개 있었고요. 분량이 어마어마했습니다. 테스트케이스 작성이 완료된 시점에는 거의 출시가 임박한 날짜였습니다. 7월 출시 예정이었는데 6월 말쯤 테스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테스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품질률이 62~3% 정도 측정이 되었고, 이는 바로 팀장님을 통해 부문장님까지 보고 하게 되었습니다.
부문장님은 현업들과 협의하고, 외주 개발사들과 출시 여부를... 사실 여부를 따질 것도 없이 이건 출시 못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0월까지 추가로 개발할 시간이 주어지고, 저희는 10월 초에 다시 테스트하게 되었습니다. 기능은 어느 정도 제외하고도 75~80% 초반의 품질률이 측정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역시나 출시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품질률이었습니다. 재협의를 통해 12월에 다시 측정하자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냥 출시 지연이라 생각하실 수 있는데 30만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프로덕트이고, 어린이들의 부모님과 약속된 프로젝트라서 지연하게 될 때마다 사업비는 점점 불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회사로써는 큰 손해이지만 브랜드 이미지와 고객의 신뢰성을 잃지 않기 위해 출시 지연이라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순히 제가 측정한 품질률 숫자를 보고 이렇게 큰 결정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파트원들의 큰 노고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테스트를 잘 수행해 주었기 때문에 신뢰성 있는 품질률을 측정할 수 있었고, 저는 자신 있게 보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2월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교육이라는 도메인 특성상 학사 일정이 시작되는 1월에는 변경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12월의 품질률 측정은 매우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품질률을 측정했을 때 92% 정도 측정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대한 이슈를 알고 출시해야 합니다. 알고 있는 이슈에 대해서 언제까지 어떻게 해결할지 Workaround를 명확히 계획해서 공유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만족하는 품질률은 아니었지만, 성공적으로 출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매우 재미있는 상황들이 생겼습니다.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젝트에서 QA가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영향력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증명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립 이례적으로 대표님께 품질 활동에 대한 보고할 기회도 생겼고, 평가도 최고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경력이 생겨서 뿌듯했고, 파트원들 모두 좋은 평가를 받게 되어 힘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경험하고, 경험은 진정한 경력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원이라는 회사는 많은 것을 큰 규모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회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이직을 선택하게 되었는데요. 이때가 딱 코로나가 확산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많은 것들이 만족스러웠지만 트랜드라고 해야 할까요? 스타트업이라는 회사의 특성을 경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 나이가 불혹이되던 시점이라~ 더 늦어지면 내 인생에 스타트업을 경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고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었지만, 다양한 경험을 위해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직 전 교원에서 최종적으로 수령했던 연봉은 영끌해서 6천만 원 초반 정도 되었습니다. 12년 차에 중견기업의 연봉이라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물론, 저는 사회생활이 조금 늦은 걸 생각하면 -500만 원 정도라고 생각해서 보통은 6천만 원 중반 정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후 직장은 2025년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이기 때문에 나중에 이직을 하게 된다면 이후 글을 연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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